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보자
'내가 식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
기억의 흐름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어릴 때부터 관심이 있던 것은 분명히 아니었다.
식물이라는 분야를 제대로 경험하게 된 건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조부모님과 합가를 시작하게 되면서 나의 신세계가 열렸다. (사업으로 부모님은 힘드셨겠지만) 천방지축 어렸던 나에겐 인생의 새로운 획이 그어진 셈이다.
주택 마당 화단에는 무화과나무, 모과나무가 있었고 3층 옥상에는 위치마다 알맞게 자리 잡고 있던 감나무(단감, 대봉), 애기사과나무, 포도나무, 매실나무, 동백나무, 수국, 선인장들, 각종 채소 화분, 꽃 화분 등 지금 생각해 보면 주택에 많은 나무를 심는 게 어떻게 가능했나 싶을 정도로 (특히 옥상에는 걱정스러운) 많은 것들이 있었다.
힘드셨던 부모님과 달리 아무 근심 없던 나는 사계절을 온전히 누릴 수 있던 집이 너무 좋았다. 봄에는 매화향에 취하고 여름에는 포도를 따먹으며 (몰래 따다 옥상에서 떨어질뻔한 적도 있었지만) 가을에는 익지도 않은 대봉감을 먹겠다며 잔뜩 따서 혼나기도 하고 겨울에는 눈이 소복하게 쌓인 동백꽃을 보며 예쁘다고 한참을 구경하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학교 앞에서 팔던 병아리 두 마리를 흰 우유 2개와 바꿔 키우겠다며 무작정 옥상에 풀어 할머니가 아끼던 꽃 화분이 다 파헤쳐지고 화분에 키우던 고추나무 잎을 몽땅 다 따먹어 나무가 휑해지고 옥상 바닥에 닭응가 잔해가 있어 어린 마음에 혼날까 봐 몰래 물뿌려 흔적을 없애던 일도 있었다. 할머니가 간간히 역정을 내시긴 하셨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신 건지) 부르면 강아지 마냥 쪼르르 따라온다고 나름 예뻐하셨었다.
정말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 행복했던 경험은 별똥별이 떨어진다는 뉴스에 할머니께서 손주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으시다며 추운 겨울 옥상 동백나무 온실옆에 스티로폼과 이불을 깔고 그 위에 앉아 다시 이불을 몇 겹을 꽁꽁 싸매듯이 덮고 다 같이 떨어지는 별똥별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고 이야기를 나눴던 일이다.
어렸던 나는 할머니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알게 모르게 식물을 키우는 방법에 대해 알게되었고 이게 지금까지 내가 식집사로서 다양한 식물을 키우게 된 가장 큰 밑바탕이 되었다. 가끔 그때 키웠던 화분을 보면 할머니 생각에 코 끝이 찡해지곤 한다.
할머니의 취미를 이어받은 내가 초보인듯 아닌듯 식집사의 일기를 여기에 남겨볼까한다.